물소리도 시원한 청계천 변에 발 담그고 소소한 걸 먹거나 책을 읽는 시민들 모습이 참 정겹다. 특히 청계광장에서 광통교를 지나 청계6~7가까지는 산책하는 내외국인들로 가득한데 나는 거기서 만나는 지인들에게 꼭 설명해 주는 데가 있다. 광통교이다.

1410년 태종 10년에 놓았으니 이제 616년이 지났다. 태종은 1.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세자 방석도 죽임을 당했는데 조선 건국에 공이 큰 자신을 제치고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계모 신덕왕후 강씨가 어린 방석을 세자로 앉힌 데에 불만이 컸다.
신덕왕후는 정동쯤에 묻혔는데, 왕이 된 태종이 이 능을 파헤쳐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장하고, 정동 무덤에서 나온 석재로 만든 다리가 바로 광통교이다. ‘나쁜 사람이니 세상 사람들은 밟고 다니라’며 다리를 놓았다니 원망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렇게 석재를 옮겨다 다리를 놓다 보니 왕비릉 병풍석 등 돋을새김 여러 문양들이 새겨진 돌을 켜켜이 쌓아 올렸는데 보살과 부처님이 거꾸로 놓이기도 했다. 허나 광통교 백미는 그런 증오의 얘기가 아니다. 네모진 사각 화강암 교각을 □자로 놓지 않고 ◇자로 놓았다. 물이 많지 않아 마른 내 또는 건천(乾川)으로 불렸던 청계천 화강암 다리의 육중한 교각을 놓으며 물의 흐름에 저항을 최소화하고자 마름모꼴로 놓은 것이다. 600여 년 전 조상들의 안전문화 의식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 우리는 오히려 이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그 주변에 새 징검다리를 놓으며 조상들과 달리 □자로 놓았다.
벌써 몇 년째 장마 때마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징검다리 일부가 떠내려가는 때가 있다. 하지만 더 큰 참사는 떠내려간 디딤돌을 다시 제자리로 옮기며 또 그대로 놓아 떠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그 뒤로는 아예 철사로 옆 돌과 꽁꽁 묶어놨다. □자 돌을 ◇자로만 살짝 돌려놓으면 떠내려가는 불상사는 없을 텐데 생각 없이 철사로 묶어 놓은 용렬함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김성섭(수필가)
- 등록일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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