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서부역이라고 하는 서울역 서부에서 공덕동 방향은 만리현 또는 만리재이었고 만리동은 거기서 유래했지만 누군가는 조선 초 학자 최만리(崔萬里)가 여기서 살아 만리동으로 했다는 얘기도 있다. 다수설은 전자가 아닐까? 그쯤에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金正浩, 1803?~1866)가 살았고 또 거기서 돌아가셨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리학자였던 고산자 김정호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머리말인 지도유설(地圖類說)에 “세상이 어지러우면 지도로써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강폭한 무리를 제거하며 시절이 평화로우면 이로써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라”고 적었다. 김정호는 대동지지와 대동여지도 등 여러 가지 지도 제작에 일생을 바쳤다.
평생을 오직 지도 제작에만 헌신했으나 대원군 이하응 등 그때 위정자들은 외세의 침략 명분이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잡아들여 고문 끝에 죽게 하였다 한다. 실제 러일전쟁 때는 러일 양국이 김정호의 지도를 이용했다. 하지만 서양에 프랑스의 장 도미니크 카시니(Jean-Dominique comte de Cassini 1748~1845)가 있다면 우리에겐 김정호가 있다.
이런 김정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수원의 국립지리정보원 내 국립지도박물관 야외전시장에 김정호 동상이 세워졌고 여행자 거리의 시작점을 알리는 왕십리문화공원에는 지도를 펴들고 어딘가로 떠나는 김정호의 상징물이 설치돼 있다.

아울러 2019년 2월 5일 숭례문 옆에서 시작하는 칠패로가 염천교를 지나 끝나는 약현성당 앞 중림동 삼거리에 아담한 김정호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김정호가 살았던 약현은 지금의 봉래동 중림동 만리동이 엇갈리고 맞물리는 지점이 어서 어느 동으로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었는지 기념비에도 3개 동을 모두를 적었다. 약현(藥峴)은 또 약초가 많다하여 붙힌 이름인데 약과·약주·약식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약현 앞 김정호 기념비도 눈여겨볼 일이지만 바로 그 옆 분홍색의 예쁜 벤치에도 눈길 한번 줄 만하다.
김성섭(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