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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우리동네 역사산책] 칠패로 염천교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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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에서 만리재 방향의 칠패로를 가다 보면 서울역 북쪽의 통일로와 교차하는 사거리를 지나며 길이 52m 폭 30m의 작은 다리가 보이는데 이 다리가 염천교다. 이 염천교 건너 오른쪽이 서소문역사공원이고 공원 맞은편은 한때 유명세를 떨치던 수제화 점포들이 있는 곳이다. 어디인들 그냥 지나치기 힘든 사연이 많지만 염천교도 마찬가지다. 염천교에는 두 가지 얘기가 전해진다.

염천교 표지석

첫 번째 설은 조선 후기 화약의 3대 원료인 유황·목탄·염초 중 염초 제조를 위해 청계천 쪽에 세워진 염초청이 철거되며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단다. 원래 염초청이 있던 곳은 연기가 많이 났는데 새로 만든 이 다리에서도 연기가 많이 나 염천교라 했단다. 새로 만들어진 이 다리도 여느 다리와 마찬가지로 거지들이 많아 끼니와 보온을 위해 불을 지펴 연기가 많았을 수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청계천4가 주변의 염초청 연기를 끌어다 염천교로 했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두 번째 설은 서해안에서 생산해 한강으로 올라온 소금을 강서구 염창동 소금 창고에 보관하였고 그 염창동과 마포나루 인근 염리동은 소금 집산지로 유명했으며 중간 도매상들은 장안 소매상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지게꾼을 불렀다. 지게꾼들은 무거운 소금가마를 지고 도성으로 향했다. 염천교는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숭례문이 저만치에 보여서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에 잠시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곤 했다. 그런데 어디 술이라는 게 한잔 술로 쉽게 끝내지던가?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소낙비가 지나갔고 소금가마는 빗물에 녹아 빈 가마니만 남았다. 주변은 소금물이 냇물처럼 흘러 염천이라 했고 그 위 다리를 염천교라고 했단다. 필자는 왠지 두 번째 설이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 설의 염초청 한자는 ‘焰硝廳’으로 불 댕길 ‘焰’을 쓰는데 지금의 염천교는 ‘塩川橋’라 쓴다. ‘塩’은 소금 ‘鹽’의 속자인데 ‘塩’은 또 산의 수소원자를 금속 또는 금속성 기(基)로 치환한 화합물의 총칭으로 해석할 수 있다니 어설픈 글쟁이가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김성섭(수필가)

202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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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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