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뒤로가기
맨위로
마을이야기
[우리동네 역사산책] 황학동과 벼룩시장 이야기
2026-03-03
  • 기사공유
  • 엑스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링크 복사
본문글자크기

황학동(黃鶴洞)은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하는 동이다. 글자 그대로 누런 학이 노닐었다는 유래와 근처 학이 춤을 추었다는 무학동(舞鶴洞)과 자연부락 백학동(白鶴洞)을 보면 그 옛날 매봉산 주변 논밭에 학이 많이 살았던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황학동 하면 벼룩시장이 생각나는데 우선 벼룩시장 어원부터 살펴보자. 벼룩이 뛰듯 전국을 뛰어 다니며 희귀한 물건을 모아온다는 말과 프랑스 파리 생투앙(Saint-Ouen)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데 후자가 유력하다. 생투앙은 1870년대 파리가 도시 정비를 위해 헌옷과 낡은 물건을 파는 노점상을 외곽으로 밀어냈는데 거기가 바로 생투앙이다. 그렇게 형성된 생투앙에서 거래되던 가구나 헌옷에 벼룩(Flea)이 들끓었고 그리하여 그곳을 생투앙 벼룩시장(Saint-Ouen Flea Market)이라고 불렀다. 2,500개 상점에서는 골동품, 빈티지 의류, 예술품, 가구 등을 사고파는데 박물관 수준이어서 수집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황학가구거리

벼룩시장 의미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가보자. 광복 전에 이곳은 미나리 밭이었다. 8·15 이후와 6·25가 터져 피난 오며 짊어지고 온 물건들을 팔아 쌀과 보리 등 먹거리를 장만하며 시장 형태를 띠기 시작했고 1990년대 호황을 누리던 때도 있었다. 원하는 물건 모두와 고장 난 것도 뚝딱 새것처럼 고쳐 주며 심지어 도둑이 훔쳐온 장물을 쓱싹 처리해 주어 한 때 도깨비 시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3년 무렵 이곳의 고미술품 판매상들이 장안평으로 많이 옮겨가긴 했으나 골동품, 중고가구, 가전제품, 각종 기계류를 파는 1,000여개 점포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국내외 관광객들과 그 옛날 향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역사 문화적 보존 가치가 있다. 재활용 매개 공간으로 기능도 살리고 사회교육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봐야 한다. 국보급(?) 귀한 물건을 찾아 대박날 수 있으니 3월에는 벼룩시장에 한번 가보자.

김성섭(수필가)

2026년 3월호
2026년 3월호
2026년 3월호
  • 등록일 : 2026-03-04
  • 기사수 :
  • 중구 SNS 채널
  • 블로그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톡채널
  • 당근마켓
2026년 3월호QR코드를 스캔하여 스마트폰에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