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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우리동네 역사산책] 청구동과 동춘서커스 추억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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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동은 2013년에 생겼다. 신당동이 하도 커 1동부터 6동까지 나누었고 그중 신당4동을 2013년 청구동으로 바꾸었다. 동명 공모 설문조사 후 주민자치위원회를 거쳐 구의회 승인으로 최종 결정했는데 청구동은 벚나무 언덕을 뜻하는 일본식 앵구동을 한국식으로 바꾼 지명이다. 이 청구동에 동춘서커스가 있었다.

서커스(Circus)는 로마시대 전차경기장 원형 울타리를 뜻하며 동춘서커스는 1925년 일본서커스단원 동춘 박동수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단이다. 196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리며 스타 배출 등용문 역할을 했고 이제는 유일한 서커스단인데 상당수 중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때 재정난으로 운영이 어려워 활동을 접으려 했으나 살려야 한다는 여론에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문화체육관광부 전문예술단체로 등록되어 기부금 공개 모집을 할 수 있는 지정단체가 되면서 겨우 살아났다. 지금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 자리를 잡고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청구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풍운아 JP(김종필)이다.

청구동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육사 졸업 후 5·16에 참여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조카 박영옥과 결혼하였으며 육군 준장 예편 후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거쳐 제11대 국무총리가 되었다. 1979년 10·26 후 민주공화당 총재가 되었으나 신군부에 체포돼 동교동 DJ(김대중) 상도동 YS(김영삼) 와 함께 3김으로 묶여 정계를 은퇴당했다.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했으나 탈당 후 자민련 총재로 DJ와 손잡고 DJP 연합을 구성하여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켜 다시 31대 국무총리가 됐지만 내각제와 대북정책 갈등으로 물러났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초인적 재활의지를 보이며 회복했다가 부인과 사별 후 다시 쇠약해져 2018년 아내 곁으로 떠났다.

53년을 산 청구동 자택은 지금은 헐려 아쉽게도 흔적은 없다. 서울의 몇몇 자치구에서는 동춘서커스단을 초청하여 공연을 했다는데 새해에는 우리 중구도 충무아트홀쯤에서 서커스 공연 한번 하였으면 좋겠다.

김성섭(수필가)

202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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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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