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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우리동네 역사산책] 어진이가 모여 산다는 회현동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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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은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하여 모일 會와 어질 賢을 쓴 데서 유래하였다. 회현, 회동으로 줄여 부르기도 했는데 서울 중구 말고 경남 창원에 한자까지 같은 곳이 있고 김해에도 회현동, 또 군산엔 회현면이 있다. 하지만 김해 회현은 고개 峴이고 군산 회현은 아예 澮縣으로 영 다르다. 어진이가 모여 산다는 회현동엔 어떤 이들이 살았을까? 조선 중종 때 영의정 정광필, 경종비 단의왕후 심씨, 소현세자가 회현동에서 났다. 독립운동가 김현철과 가수 신해철, 탤런트 김혜자, 이승연도 이곳 태생이다. 특히 대배우 김혜자는 회현동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41년생이니 80대 중반인데 여전히 소녀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키며 천사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

회현동 1가 36-7 우리은행 앞 은행나무
▲ 회현동 1가 36-7 우리은행 앞 은행나무

〈전원일기〉로 ‘국민엄마’의 칭호를 받았고 아프리카 어린이를 헌신적으로 돌봐 세계인의 ‘마더’라 칭송받았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도 유명하다. 회현동의 상징은 528년 된 서울시 보호수 은행나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은행 본점 앞에 있다. 회현동에는 또 남대문시장이 있다. 남대문시장은 1414년(태종14년) 이래로 시장의 시초가 되어 지금까지 600년 이상 상업활동이 계속되어 온 한국 최고의 전통 재래시장이다. 물론 남대문시장의 법정동은 남창동이지만 행정동은 회현동이다. 남대문시장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소유 시장이기도 했고 조선총독부 훈령에 따라 중앙물산시장으로 강제 변경되기도 했다. 6·25 땐 폐허로 변해 시장 기능이 마비되기도 했고 이후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해 큰 상흔을 입기도 했다. 오늘날 남대문시장은 66,116㎡(약 2만 평)에 1만 여개 가게와 5만 여 종사자들이 삶의 터전으로 살아간다.

때때로 시장을 지나가는데 사람이 많으면 기분이 좋다. 그중에서도 외국인들이 단체로 이동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 살피는 걸 보면 신바람이 난다. 남대문시장은 1년 365일 내외국인들로 시끌벅적해야 한다.

김성섭(수필가)

202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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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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