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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우리동네 역사산책] 소공동의 공주 이야기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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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은 조선 태종과 원경왕후의 둘째 딸이며 세종의 누나 경정공주(慶貞公主)가 하사 받은 궁이 있어 속칭 작은 공주골로 불렸다. 이를 소공주동이라 했고 또 줄여서 소공동이라고 했다. 이게 소공동의 유래다. 워낙 도심이라 누가 사나했더니 1,069세대 2,820명이 산단다. 임진왜란 때 20세의 총대장 우키타 히데이에가 경정공주 집을 차지했고 이후 명나라 장수 이여송도 머물렀다. 그 뒤 청의 사절을 맞는 영빈소로 남별궁이라 했고 임오군란 후 수 천 명의 청군도 주둔했다.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圜丘壇)을 세웠으나 일제는 곧 허물고 1914년 총독부 조선철도호텔을 건축하였다. 이것이 현조선호텔이다. 이 무렵 소공동은 당시 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이름을 따 장곡천정(長谷川町)이라 불렸다. 철도호텔은 5층으로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그 무렵 다른 일본인 노구치시타가우는 1938년 환구단 터 옆에 8층 건물인 반도호텔을 지었는데 이후론 이 건물이 제일 높았다. 노구치는 새로 지은 8층 반도호텔 5층에 사무실을 두고 조선호텔을 내려다보며 흡족해 했단다.

현재 환구단 모습
▲ 현재 환구단 모습

환궁우와 환구단이 함께 있었던 옛모습
▲ 환궁우와 환구단이 함께 있었던 옛모습

해방 후 미 군정청 본부도 있었고 1960년대 장면 국무총리가 머물기도 했다. 1974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사들였고 그 후 롯데호텔이 들어섰다. 소공동을 가로지르는 1.3km의 소공로 중 서울광장 남단에서 한국은행 본점까지의 명동 일대 중심구간인 414m는 1950~1970년대 고급맞춤양복점 거리로 유명하여 대통령도 회장님도 대부분 이곳에서 양복을 맞춰 입었다. 당시 H양복점, P양복점, L양복점 등이 있어 그 시절 이름깨나 날리던 유명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던 맞춤양복점의 거리였다. 최근까지 남아있던 일부 몇몇 양복점은 소공로 서쪽에 새로 짓는 호텔 공사와 노후화된 건물 붕괴 위험 등 안전 문제가 심각하여 인근 남대문로와 명동 일대로 옮겨갔다. 소공동(小公洞)! 태종 따님이 살던 곳임을 알아야 한다.

김성섭(수필가)

202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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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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