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엔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관악산, 청계산이 있고 또 230여 개의 크고 작은 고개가 있었다. 구전과 문헌으로 전해 오는 이들 고개 외에도 옛날부터 이름 없이 존재하던 고개는 더 많았다.
고개들은 이현(배오개, 진고개), 동현(구리개, 명동성당 근처), 치현(풀무재, 충무로↔을지로) 등으로 불리다가 세월이 흘러 도로가 되고 아스팔트가 깔리며 사라졌다. 무악재, 남태령, 망우리, 미아리 고개가 겨우 남아 있고 일부는 인현동처럼 동명으로 겨우 남아 있다. 인현동은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1588~1628) 집이 있어 인성현이라 했고 이를 줄여 인현이라 한 게 동명의 유래가 됐다. 하지만 인현동은 무엇보다도 이순신 장군 탄생지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장군은 덕수 이씨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초계 변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두 군데 있다. 1985년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중구 초동 18-5 명보아트홀 앞에 ‘충무공 이순신 생가 터’ 표석을 세웠고, 2017년 이곳에서 골목으로 249m 들어가면 생가 위치와 가까운 인현동 31-2번지 신도빌딩 입구 벽면에 ‘충무공 이순신 생가 터’라는 동판을 설치하였다. 추정이긴 하나 학계의 엄정한 고증을 거쳤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인현동에서 태어나 10세 안팎의 유소년 시절을 보내고 충남 아산으로 이사 갔다.
▲ 인현동 1가 31-2번지 신도빌딩 자리가 이순신 탄생지
이순신 장군은 자기보다 3살 더 많은 서애 유성룡과 형님 아우하며 동네친구로 사이좋게 지냈는데 유성룡 집터가 충무로역 1번 출구 쪽인 것을 보면 이순신의 생가 터는 인현동 1가 31-2번지쯤이 맞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장군의 탄생지가 건천동이라 하는 이도 있으나 건천동은 인현동 40번지 부근 마른내골의 한자어로 인현동 31-2번지가 더 정확한 표기이다. 서울시는 이곳에 이순신 장군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이 하루빨리 추진되어 이순신과 서울 중구의 인연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김성섭(수필가)